스토리(9)- 스산한 가을이 펼쳐진 미국 시애틀을 배경으로 애나와 훈의 짧고도 강렬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 지독하도록 슬프고 아련한 사랑을 홀로 품고 있는 애나와, 그런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린 남자 훈의 사랑이 '만추'. 깊게 익은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았다. 아름다운 청춘임에도 삶을 옥죄고 있는 속박과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던 그들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닮아있었고, 그래서 서로에게 더 끌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사랑은 하룻밤 꿈처럼 짧았지만 뜨겁지도, 시리도록 가슴아프지도, 눈부시게 아름답지도 않았다. 잠깐 익었다가 바스락하고 부서지는 한줌의 낙엽과 같은, 고독한 사랑이었다.
영상미(8)- 영상은 아름다웠다. 미국시애틀 올로케이션 덕이었을까! 넓고도 황량한, 바스러져가는 낙엽 빛깔이 애나와 훈의 상황과딱 맞아떨어졌다. 티백을 넣고 차를 우려낼때 물이 뜨겁고 적을수록깊은 색이 우러나오는것처럼, 영상은 점점 더 깊은 매력을 뽐냈다. 특히 놀이공원에서 연극을 보던 장면과, 둘이 나란히 앉아애나만 일방적으로 대화를 하던 장면이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아름다운 영상에 맞춰 bgm을 군데군데 깔아줬더라면 극의 분위기가 살았을 것 같은데, bgm이 거의 깔리지 않았던 점이 가장 아쉽다.
재미(4.5) - 나의 현빈느님은 이 영화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다 좋은데 영어를 참 못하신다. <시크릿가든>의 김주원과 오버랩되는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전혀 다른 캐릭터인데 말이다. 개인적으로 탕웨이만 보였던 영화. 탕웨이의 위대한 포스에 현빈은 '깨갱'하고 무릎꿇어야 할 것 같다. 탕웨이를 위한 영화이자 탕웨이만 빛나는 영화. 재미는 "글쎄" 영화자체가 예술이 아니라, 예술을 모방하기 위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만추를 보다
어릴 적 중국에서 미국으로 떠나온 애나는 영어도 금방 배우고 세상살이도 쉽게 터득한 똑똑한 아이였다. 그런애나 곁에오랫동안 머물렀던 한 남자. 그는 그녀의 오빠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건 사랑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애나를가차없이 떠나갔고, 애나는 그를 가슴에 묻은 채 방황하다가 자신을 아껴주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안타깝게도 애나를 향한 그 남자의 사랑은 집착에 불과했고, 그 집착은 어긋난 방향으로 틀어져서로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애나를 다시 찾아온 그가 남편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했고, 여전히 마음에 그를 품고있던 애나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던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애나.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도 모두잃고 떠나야만 했다. 7년 동안 어느 누구도볼 수 없었던 어두운 철장 속으로.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모친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72시간의 특별휴가를 받고 시애틀로 나왔다. 그리고 애나가 시애틀로 가는긴 여정에서 등장하는 운명같은 남자, 훈. 깔끔한 외모와 다소 병적인 자기애로 똘똘뭉친 그 남자는 어쩐지 자꾸 애나에게 마음이 간다. 금쪽같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애나의 손에 걸어둔 것을 핑계로 자꾸만 그녀를 보게 되는 훈. 그렇게 그들의 짧고도 깊은 사랑이 시작된다.
사실 훈은 '손님'을맞이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접대부였고 처음에는 애나를 그저 자신의 '손님'으로만 여겼지만 짧은 하루 함께한 애나는 다른 손님들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강렬한 끌림이 있었고, 애나 역시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주는 그에게 특별한 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애나에게는한없이 밝고 철없는 청년처럼 보이는 훈에게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훈에게는 그저 '손님'이었던 유부녀 옥정의 집착적 사랑은 결국 훈의 목을 조르는 위협적인 독이 되었고 결론적으로 그 어긋난 집착은 또 다른 어둠을 불러오는데...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치뤄야 하는 그들앞에 놓인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는 그들의 청춘과 사랑앞에 잔인하도록 차갑기만 한데.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어느 가을날의 쌀쌀한 바람이 한껏 느껴지는 쓸쓸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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